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외적(外敵)의 침략(侵略)으로 인하여 수많은 시련(試鍊)을 겪었다. 그때마다 초야(草野)에 묻혀있던 사림(士林)들이 의병(義兵)을 일으켜서 그 국난(國難)을 극복(克服)하였다.
그 국난(國難) 중에서도 가장 혹심(酷甚)했던 전란(戰亂)이 선조조(宣祖朝)의 임진왜란(壬辰倭亂)이었다. 당시 어가 (當時 御駕)는 의주(義州)에까지 몽진(蒙塵)하고 분조(分朝)한 세자(世子)는 관동(關東)에서 피체(被逮)되고 국토(國士)는 초토화(焦士化)하여 국운(國運)이 경각(頃刻)에 다달았는데 이때도 국가(國家)의 존폐(存廢)를 가름한 것은 곧 영남(嶺南) 70 주군(州郡)에서 일어났던 의병(義兵)들의 힘이었다.
강호(江湖)의 선비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번갈아가며 전세(戰勢)가 불리(不利)할 때면 병력(兵力)을 하나로 집결(集結)시켜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勝負)를 걸었으니 이가 곧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구국동고록사적(救國同苦錄事蹟)이다.
이 동고록사적(同苦錄事蹟)을 고찰(考察)하면 우리 영남 각 주군(嶺南 各 州郡)의 명문거족(名門巨族)들은 한 문중(門中)도 빠짐없이 모두 이 화왕산성(火旺山城)의 대전(大戰)에 참전(參戰)했음이 인증(認證)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社會)의 국민의식(國民意識)은 선조(先祖)들의 이와 같은 호국사상(護國思想)에는 무관심(無關心)에 가까운 상태(狀態)로서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에 대해서는 정신적(精神的)으로 거리(距離)가 있는 현실을 부인(否認)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事實)이다. 우리들은 이를 우려(憂慮)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國家)는 각 시군(各 市郡)마다 충혼탑(忠魂塔)을 건립(建立)해서 국가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그 탑에 봉안(奉安)되어 있는 위패(位牌)들은 모두가 광복후 육이오사변(光復後 六二五事變)에 전몰(戰歿)한 군경(軍警)의 영령(英靈)들이다. 어느모로 보더라도 그보다 우선(優先)되어야 할 외적(外敵)을 격퇴(擊退)한 의사(義士)나 열사(烈士)들을 국가주관(國家主管)으로 봉안(奉安)한 곳은 아직 우리 고장에 없는 실정(實情)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영남(嶺南)의 중심지(中心地)인 이 대구의 망우당공원(忘憂堂公園)에 충의단(忠義壇)을 세워서 임란(壬亂)의 7년 전역(戰役)을 극복(克服)한 충혼 의열사(忠魂 義烈士)들의 영령(英靈)을 봉안(奉安)하여 길이 후손(後孫)들에게 호국(護國)의 상징(象徵)이 될 수 있는 신당(神堂)을 전하고자 하오니 강호제현(江湖諸賢)께서는 적극적(積極的)인 성원(聲援)과 협찬(協贊)이 있으시기를 빌면서 이로 그 취지(趣旨)를 가름한다.
1995年 8月 15日
忠義壇 建立 發起人一同 拜
權五根 朴淳稷 沉載完 郭禮淳
金澤鎭 金秉義 金聖權 禹鍾默
金棕煥 柳龍佑 鄭喜永 李樹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