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국가인 조선에서의 왕은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로서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해야 했으나 임진왜란 당시의 왕인 선조는 전쟁의 징후를 인지하여 전쟁에 대비하여 대책을 세우지 않고, 전쟁이 발생한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백성을 위한 마음보다는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의주로 피난을 갔고, 명나라 원군을 끌어들여서 전쟁에 참여토록 했으나 완전하게 왜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조선의 남부에 왜군과 명군이 함께 진주함으로서 조선백성은 명군과 왜군에 의한 이중 약탈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선의 관군과 의병의 전공을 치하하기 보다는 명군에 의해 왜적이 물러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피난길에 같이 동행했던 신하들에게 최고의 공을 인정하였고,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해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임진왜란 전후의 선조의 무능함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는지, 국가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전 조선의 통신사로 임명되어 왜국을 다녀온 서인의 황윤길과 동인의 김성일은 서로의 의견을 모아서 왕인 선조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했어야 했으나 서로 다른 정보를 보고하고 선조는 동인인 김성일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왜적이 침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전쟁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정당)의 이익만을 위하여 판단하고 자신들의 정권욕을 채우기 위하여 국가의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할 때 국가와 국민은 비참한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의 구원요청에 의해서 조선에 파견되었으나, 명나라 군인들의 생각은 속국인 조선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이 대패를 하자 명군은 사기가 떨어져, 이후 조선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전투를 하는 흉내만 내었고, 조선에 계속 진주함으로서 조선의 백성을 수탈하여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
이는 자주국방을 하지 않고 외세를 끌어들여서 전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조선이 개국 이래 큰 전쟁 없이 평화의 시대가 계속되어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국방의 중요성과 주변 타국가의 상황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지 않고 당파싸움만 하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국가적 존립 위기를 맞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한 국가가 계속 생존을 하고 번영을 하려면 타국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는 튼튼한 국방력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평시에도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국가의 위협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항상 연구하고 군대를 훈련하여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